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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여길​ 꼭 읽으세요

마츠노 트랩 2

-이치마츠

캠프에서 지낸 지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이치마츠는 마치 군대에 온 사람처럼 벽에다가 작대기를 그어 가며 캠프가 끝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억지로 끌려 오니 재미는 고양이 발톱 밑의 때만큼도 없었다.

“아직 이틀밖에 안 지났어…” 이치마츠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벽을 손톱으로 긁으며 말했다.

옆 침대에 누워있던 대니가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그렇게 오기 싫은데 왜 온거야?”

이치마츠는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그리고 캠프가 아니라 바깥 활동이 싫은거야. 운동 싫어….” 이치마츠는 다시 절망적인 목소리를 내며 손톱으로 숙소의 나무 벽을 끼기긱 긁었다.

“그럼 넌 쉴 때 뭐하는데?” 대니가 묻자 이치마츠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뭐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이치마츠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다 여기서 못 하는거네. 힘내.” 대니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이치마츠는 살짝 고개만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오후에 뭐 하는지 알아?”

“팀 가르고 페인트볼 총으로 팀전 한다는데.”

이치마츠는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거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이제 5분도 안 남은 점심 시간이 끝나면 밖에서 요리조리 뛰어 다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 그냥 자살할까.” 이치마츠는 아무도 안 들리게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도 안 들었을거라고 확신한 뒤 이치마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대니.” 이치마츠의 현재 유일한 친구가 잡지를 보던 고개를 들었다.

“나 산책 좀 할거야. 집합 장소에서 보자.”

대니의 알았다는 대답을 들은 후 이치마츠는 숙소 밖으로 나섰다. 천천히 걸으면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 봤다. 맑고 투명한 색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은 후 이치마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여기 저기 서성대다가 갑자기 귀에 꽂히는 이야기가 들려 멈춰 섰다.

“그 걔 있잖아, 누구냐… 어쨌든 아시아계 앤데… 이름이 좀 길던데…”

“이름은 됐고 걔가 왜?”

“아니 약간 이중인격 같단 말이야. 내가 인사하면 어떨 때는 걍 씹고 가고 어떤 때는 되게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또 옷도 되게 자주 바뀌는게 결벽증인거 같아.”

이치마츠는 얼굴을 찡그렸다. 처음에는 자기 얘기인줄 알았다. 그리고 확실히 인사하는 애들을 무시하고 지난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얘기들은 자신의 얘기가 아니었다. 이치마츠는 얼굴을 잔뜩 찌뿌린 채 다시 숙소로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앉은 후 잠시 생각을 하려는데 대니의 목소리가 그를 방해했다.

“어, 집합 장소에서 만나다고 하지 않았어?” 대니가 물었다.

이치마츠는 잠시 멍 하다가 “아 맞다. 미안. 딴 생각을 하느라 잊어버렸어.”

“그래? 그럼 뭐… 그냥 지금 나갈레? 금방 집합이니 지금 그냥 나가자.”

이치마츠는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 숙소 밖으로 향했다.


이치마츠는 본인의 페인트볼 총과 갑옷 비스무리한 보호 장비와 얼굴까지 가리는 헬멧을 받은 후 자신의 위치로 갖다. 아무리 남자애들이라지만 전쟁 놀이라니… 이치마츠는 본인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구석으로 가서 숨어 있을 계획이었고 마침 자신의 위치도 상당히 구석진 곳이었다.

이치마츠는 땅바닥에 조용히 낙서를 하면서 이 유치한 전쟁 놀이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치마츠는 인기척을 느꼈다. 서둘러 헬멧을 쓰고 총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게임의 규칙은 심장 근처에 페인트가 묻으면 아웃이었다. 이치마츠는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었기 때문에 귀찮지만 또한 아웃 당하는 것도 싫어 몸을 최대한으로 움츠린 뒤 주위를 다시 살폈다.

뭔가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토도마츠

토도마츠는 길을 잃었다. 이런 숲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적진이 아니길 바라면서.

천천히 숨을 죽여가며 걷고 있었는데 사람 목소리가 들려 급하게 수풀 속에 몸을 감추고 이파리 사이로 빼꼼 내다봤다.

이런 젠장. 손목에 달고 있는 파란 손수건. 적진이다. 토도마츠는 왠지 몰입하게 된 이 상황 속에 들키지 않기 위해 천천히 기어갔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다다르자 토도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는 팀이 다음 주까지 설거지 담당이다. 정말로 하기 싫었다. 한명이라도 많이 살아 남는 팀이 이긴다는 룰을 떠올리며 토도마츠는 숲 깊숙히 기어 들어갔다.

계속 기어가던 토도마츠는 아무도 보이지 않자 긴장감이 약간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약간 가벼워진 마음으로 계속 기어가던 중 팔목을 약간 삐끗하더니 옆으로 몸이 쏠렸다.

‘어, 어라?’

그렇게 생각한 것도 이미 떨어지기 시작한 뒤었다. 토도마츠는 충격을 예상하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조심스럽게 눈을 뜨려 하던 참에,

“야! 이 개새끼야, 안 내려와?”

토도마츠는 ‘으어어’ 소리를 내며 서둘러 밑에 깔려 있던 다른 남자애의 등에서 내려왔다.

헬멧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화난 것 같았다.

토도마츤는 앞의 소년이 파란 손수건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손목을 등 뒤로 숨겨 빨간 손수건을 가렸다.

“정말 미안, 실수로 넘어져서…” 토도마츠는 목 뒤를 긁으며 최대한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헬멧 너머로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토도마츠는 뒤로 슬금슬금 내뺐다. 얼른 도망가야 살 것이다.

넘어졌던 상대방이 일어서더니 토도마츠에게 걸어왔다.

“너. 손수건-“

토도마츠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의 남자애에게 달려들어 그를 넘어트렸다. 그리고 나선 도망가기 위해 얼른 일어섰지만 그 남자애가 토도마츠의 발목을 잽사게 붙잡아 토도마츠를 넘어뜨렸다.

토도마츠는 헬멧을 쓰지 않았으면 얼굴이 난리가 났을거라고 생각하며 일어나려고 했다. 상대편 남자애는 이미 옆에 있는 페인트볼 총에 손을 뻗고 있었지만 토도마츠는 순순히 놔두지 않았다.

토도마츠는 남자애가 잡고 있지 않는 다리로 몸을 세게 걷어 찬 뒤 자기의 총이 떨어진 곳까지 기어가 총에 손을 뻗었다.

토도마츠는 총을 집은 후 몸을 돌려 상대편 남자애를 향해 쐈다. 심장 바로 뒤 등에 명중했다.

토도마츠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살기를 내뿜고 있는 남자애를 쳐다 봤다.

침을 꿀꺽 삼키고 토도마츠는 그 애에게 다가갔다. “저, 그게…”

그 애가 일어서자 토도마츠는 약간 몸이 움찔했다. 그 애가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내밀었다.

‘화해의 의미인가?’ 토도마츠는 조심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악수하듯 손을 흔들려고 했는데 그 때 손을 잡은 남자애가 토도마츠를 앞으로 세게 잡아 당겨 토도츠는 다시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았다.

“야, 뭐야?” 토도마츠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일어나며 말했다.

“뭐긴 뭐야. 아까 내 위에 떨어진 복수지.” 지루한 목소리로 앞의 소년이 대답했다.

“아까 넘어뜨렸잖아!”

“그건 도망가려고 하니까 잡은거지.”

“어쨌든 넘어뜨린건 맞잖아! 헬멧 안 쓰고 있었으면 내 얼굴 다 나갔을걸? 나름 국보급인 내 얼굴 망치면 책임 질거야?”

“허!”

헬멧에 가려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목소리에서 어이 없음이 묻어 나왔다.

“거기 무슨 일이니? 집합 장소로 돌아가야지.” 파란 팀 교관이었다.

“게임은 끝났어. 헬멧 벗고 어서 돌아가자.” 교관이 말을 이었다. 옆에 다른 파란 팀 아이들도 서 있었다.

토도마츠는 한숨을 푹 쉬고 헬멧에 손을 얹었다. 그 소년도 헬멧을 풀고 있었다.

‘그래, 그 잘난 낯짝이나 한번 보자.’ 토도마츠는 헬멧을 벗으면서 생각했다. 헬멧에 묻은 먼지를 턴 뒤 고개를 들자 교관을 포함해 모두 눈이 휘둥그래져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옆을 보니 그 소년이 서 있는 자리에 자기와 똑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작가의 말: 분량이 갑자기 길어진 것은 기분 탓입니다. 아마 이 길이처럼 갈거 같네요.

소통은 여기서

Posted by Imitation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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